줄다리기의 구조: 힘이 아니라 ‘동시성’이 승부를 만든다
줄다리기를 처음 접하면 많은 분들이 “결국 더 힘센 쪽이 이기지 않나?”라고 생각하십니다. 물론 체중과 근력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줄다리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합니다. 상대 팀이 더 커 보였는데도, 우리 팀이 호흡을 잘 맞추면 줄이 움직입니다. 반대로 우리 팀이 힘이 세도 각자 제멋대로 당기면 금방 지치고, 줄이 흔들리며 중심이 무너집니다. 줄다리기의 핵심은 ‘개별의 힘’이 아니라 ‘같은 순간에 힘을 모으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공동체가 실제로 살아가는 방식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줄다리기에서 승부를 가르는 요인 중 하나는 리더의 구호입니다. “지금 당겨!”, “버텨!”, “한 번에!” 같은 구호가 정확한 타이밍에 들어가면 팀 전체가 동시에 힘을 씁니다. 이때 줄은 단순히 사람들의 힘의 합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파도’처럼 이동합니다. 어떤 팀은 당기다가도 잠시 버티며 상대가 힘을 쓰게 만들고, 상대가 지치는 순간 한 번에 끌어오기도 합니다. 이 전략은 단순한 근력 대결이 아니라, 에너지의 배분과 팀의 호흡을 다루는 기술입니다. 그래서 줄다리기는 실제로 해보면 생각보다 머리를 쓰게 됩니다.
또한 줄다리기는 바닥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발이 미끄러지면 힘이 줄에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줄다리기는 “힘이 센 사람”이 아니라 “힘을 땅에 전달하는 사람”이 강합니다. 무릎을 굽혀 중심을 낮추고, 발을 단단히 고정하고, 몸을 뒤로 기울여 마찰을 확보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 또한 공동체의 삶과 닮았습니다. 개인이 가진 능력이 아무리 커도, 그것을 현실에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기반이 없으면 힘이 새는 것처럼, 줄다리기에서도 기반이 중요합니다. 전통사회에서 땅은 삶의 기반이었고, 줄다리기라는 놀이가 땅을 박차는 움직임 위에서 성립한다는 사실은 상징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줄다리기의 구조는 결국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혼자 세게 당기면 오래 못 간다. 함께 같은 타이밍에 당겨야 이긴다.” 이 원리는 농경사회에서 공동체가 일을 해내는 방식과 정확히 겹칩니다. 모내기를 할 때도, 김을 맬 때도, 수확을 할 때도, 각자가 따로 움직이면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호흡을 맞추면 일이 빨리 끝나고, 그 과정에서 피로도 덜합니다. 줄다리기는 그 ‘호흡의 기술’을 놀이로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마을 줄다리기: 준비 과정부터 이미 공동체 행사였다
정월대보름 줄다리기는 단지 줄을 가져와서 당기는 놀이가 아니었습니다. 큰 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새끼를 꼬아야 했고, 줄을 연결하고, 판을 만들고, 편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즉, 준비 자체가 공동체 작업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이미 줄다리기의 의미가 시작됩니다. 어떤 사람은 새끼를 꼬고, 어떤 사람은 줄을 나르고, 어떤 사람은 음식과 물을 준비합니다. 각자의 역할이 맞물리며 행사가 완성됩니다. 줄다리기는 시작 전부터 “우리 마을이 함께 움직인다”는 메시지를 사람들의 몸에 새깁니다.
편을 나누는 방식에도 의미가 붙었습니다. 지역에 따라 동편과 서편, 남자편과 여자편, 젊은편과 어른편 등 다양한 방식으로 팀을 나누곤 했습니다. 이때 승부는 단순한 경쟁이지만, 동시에 마을 내부의 관계를 조정하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평소에는 어색했던 집안끼리 같은 편이 되면서 가까워지기도 하고, 평소에 갈등이 있던 사람들도 한 번은 같은 줄을 잡으며 ‘같은 편’의 감각을 경험합니다. 공동체는 이렇게 놀이를 통해 관계를 재배치하고, 긴장을 완충합니다.
그리고 줄다리기의 판은 구경꾼까지 포함해 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축제였습니다. 당기는 사람만이 아니라, 응원하는 사람, 구호를 외치는 사람, 판을 정리하는 사람까지 모두가 참여합니다. 누군가는 앞에서 리듬을 만들고, 누군가는 뒤에서 힘을 보태고, 누군가는 옆에서 분위기를 달구며, 누군가는 넘어지는 사람을 잡아줍니다. 이 구조는 공동체의 역할 분담과 유사합니다. 전통사회에서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보이는 노동과 보이지 않는 노동이 모두 필요합니다. 줄다리기는 그 사실을 놀이판 위에서 그대로 보여줍니다.
줄다리기가 남긴 의미: 승부가 끝나도 ‘관계’는 남는다
줄다리기는 승부가 분명한 놀이입니다. 이기면 환호하고, 지면 아쉽습니다. 그런데 줄다리기가 단순한 경쟁으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 문화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승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함께 버텼다’는 감각입니다. 줄다리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정말 힘이 빠집니다. 손바닥은 아프고, 다리는 떨리고, 숨은 차고, 줄은 묵직하게 버팁니다. 그런데 옆 사람이 함께 줄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 그 힘든 순간을 지나게 해줍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감각이 생기고, 그 감각이 사람을 한 번 더 버티게 합니다. 줄다리기의 본질은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버티는 방법에 있습니다.
이 감각은 공동체가 위기를 견디는 방식과 닮았습니다. 농경사회에서 흉년이 들면 한 집만 힘든 것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힘듭니다. 그때 “함께 버틴다”는 감각이 없으면 공동체는 쉽게 무너집니다. 줄다리기는 평화로운 놀이판 속에서, 위기를 버티는 공동체의 감각을 미리 연습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정월대보름에 줄다리기를 했다는 것은 단지 놀았다는 뜻이 아니라, “올해도 함께 버티자”는 다짐을 몸으로 확인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줄다리기를 다시 해보면, 그 의미가 의외로 선명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회사 워크숍이나 학교 행사에서 줄다리기를 하면,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하지만 금세 진지해집니다. 그리고 끝나고 나면 이상하게도 서로 가까워집니다. 같은 줄을 잡고 같은 순간에 힘을 썼던 경험이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전통사회에서 줄다리기가 공동체 문화의 핵심 놀이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줄다리기는 “힘센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함께 호흡을 맞춘 사람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면,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버텼다”는 경험입니다. 전통놀이는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기술이었고, 줄다리기는 그 기술을 가장 강하게 보여주는 놀이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줄다리기와 함께 대보름을 대표하는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를 더 깊게 다뤄, 불놀이가 단지 재미가 아니라 어떤 심리적·생활적 기능을 수행했는지 이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