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돌이는 사월 초파일이나 큰 재가 있을 때 사찰에서 탑을 돌며 행하던 불교의식이자 민속놀이입니다. 처음에는 승려와 신도가 염불과 범패를 하며 탑을 도는 의식이었지만, 뒤에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놀이 성격도 함께 띠게 되었습니다. 출처
서론
탑돌이는 이름만 보면 단순히 탑 주위를 걷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자료를 보면 그 성격이 훨씬 복합적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탑돌이를 “사월 초파일 또는 큰 재가 있을 때 사찰에서 거행하는 불교의식 또는 성인남녀놀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탑돌이는 의식과 놀이가 함께 들어 있는 전통 행위로 이해하시는 편이 가장 정확합니다. 출처
이 놀이가 특히 초파일과 자주 연결되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사월초파일 행사 항목은 음력 4월 8일이 석가모니 탄생을 기념하는 불교의 가장 큰 명절이며, 이날 사찰에서 법회뿐 아니라 연등행사, 관등놀이, 성불도놀이, 탑돌이 같은 불교적 놀이도 함께 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탑돌이는 절 안에서 따로 떨어진 행위가 아니라, 초파일 밤을 이루는 큰 불교 축제의 한 장면으로 보셔야 자연스럽습니다. 출처
또한 탑돌이는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전통은 아닙니다. 국가유산포털은 강원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월정사 탑돌이’를 별도로 안내하며, 지정일을 2016년 11월 11일로 제시합니다. 이 점을 보면 탑돌이는 과거 기록 속의 풍습이면서도, 오늘날 특정 지역 사찰에서 전승 가치가 인정된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출처
탑돌이는 원래 어떤 의식이었을까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탑돌이가 원래 승려가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며 부처의 큰 뜻과 공덕을 노래하면, 신도들이 그 뒤를 따라 등을 밝혀 들고 탑을 돌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던 불교의식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문장만 보아도 탑돌이의 출발점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탑이라는 예경 대상을 중심으로 돌며 공덕을 기리고 왕생을 비는 종교적 행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처음에는 분위기도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축제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같은 자료는 초기에 법악기인 범종·운판·목어·법고를 치면서 범패와 염불만 하였다고 설명합니다. 즉 초기 탑돌이는 음악과 소리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어디까지나 불교의식의 일부였고 경건성이 중심이었다는 뜻입니다. 출처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 탑돌이를 단순한 “절에서 도는 놀이”로만 이해하면 출발점을 놓치기 쉽기 때문입니다. 탑돌이는 본래 탑을 공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예경 의식이었고, 그 위에 시간이 지나며 민속적 요소가 더해진 형태로 설명됩니다. 그래서 의식성과 놀이성 가운데 어느 하나만 강조하면 전체 모습이 흐려집니다. 출처
어떻게 의식에서 놀이로 바뀌었을까요
탑돌이가 민속놀이 성격을 띠게 된 흐름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설명됩니다. 자료는 불교가 대중화되면서 탑돌이가 민속놀이로 변화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는 탑돌이가 사찰 내부의 엄숙한 의식에만 머물지 않고, 더 많은 평신도와 일반 사람들이 참여하는 열린 행사로 확장되었음을 뜻합니다. 출처
변화의 흔적은 음악과 노래에서도 드러납니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뒤에 와서는 삼현육각이 연주되고, 「포념」이나 「백팔정진가」 같은 민요풍의 노래도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탑돌이가 여전히 불교적 의미를 지니면서도, 사람들에게 더 익숙한 소리와 리듬을 받아들이며 축제적 성격을 넓혀 갔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기도 내용도 변했습니다. 백과사전은 부처에 대한 칭송과 극락왕생 기원에서 나아가, 크게는 국태민안, 작게는 개인의 소원을 비는 방향으로 내용이 바뀌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설명은 탑돌이가 불교 의례이면서도 민간의 현실적 소망을 담는 생활문화로 점차 변해 갔음을 보여줍니다. 출처
실제로는 어떤 순서로 돌았을까요
탑돌이는 아무렇게나 빙빙 도는 행위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먼저 삼귀의례, 곧 귀의불·귀의법·귀의승을 제창하는 예를 행한 뒤 시작한다고 적습니다. 이 점을 보면 탑돌이의 출발은 놀이보다 의례에 더 가까웠고, 그 의례적 틀 위에 움직임이 이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이후에는 십바라밀다정진도를 그리며 돈다고 설명됩니다. 자료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방편, 원, 역, 지의 열 단계에 따라 각각 단월형, 반월형, 혜경형, 전자형, 구름 모양, 금강저형, 좌우쌍정형, 전후쌍정형, 탁환이주형, 성중단월형 같은 모양을 그리며 돈다고 구체적으로 적고 있습니다. 이는 탑돌이가 단순 원형 돌기가 아니라, 불교 수행 덕목을 상징하는 도형적 동선을 포함한 연행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출처
이 부분은 오늘날 처음 접하는 분께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풀면, 탑돌이는 그냥 탑 주위를 한 방향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상징 도형과 순서를 따라 돌며 수행의 의미를 몸으로 표현하는 구조였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점이 탑돌이를 다른 단순 원무나 행렬과 구분하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출처
왜 초파일 밤의 탑돌이는 축제처럼 느껴질까요
사월초파일 행사는 원래 불교의 가장 큰 명절이었지만, 동시에 우리 민족이 함께 즐긴 민속 명절로도 설명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초파일이 되면 절 앞에 성대한 장이 서고, 사람들이 몰려들며, 연등행사와 여러 놀이가 함께 이루어졌다고 정리합니다. 즉 탑돌이는 이 큰 밤축제의 흐름 안에서 사람들의 발걸음과 불빛, 소리와 구경 문화가 겹쳐지며 더 축제적으로 느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출처
특히 탑돌이는 등을 밝히고 도는 행위와 연결되기 쉬웠습니다. 백과사전이 신도들이 등을 밝혀 들고 탑을 돌았다고 설명하는 것처럼, 빛을 든 사람들이 밤의 탑 주위를 질서 있게 도는 장면 자체가 이미 강한 시각적 인상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탑돌이는 연등행사와 따로 떨어지기보다, 불빛을 매개로 긴밀하게 결합된 초파일 밤의 중심 연행으로 이해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출처
오늘날에는 어떻게 전승되고 있을까요
오늘날 탑돌이는 모든 사찰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지역과 사찰에서는 무형유산으로 관리되며 전승되고 있습니다. 국가유산포털은 월정사 탑돌이를 강원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소개하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이어져 내려오던 것을 1969년 이후 전통적 탑돌이로 복원하고 체계화해 왔다고 설명합니다. 이 점은 탑돌이가 단순히 과거 기록 속에만 남은 행위가 아니라, 복원과 전승의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출처
다만 현재의 탑돌이는 옛 민속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던 초파일 밤 풍경과 완전히 같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현대 전승은 사찰 행사, 문화유산 공개행사, 복원된 연행 형태를 통해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탑돌이를 보실 때는 “과거 초파일 밤의 종교의식이자 민속놀이가 현대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관점으로 이해하시면 가장 무리가 없습니다. 출처 출처
결론
탑돌이는 사월 초파일이나 큰 재가 있을 때 사찰에서 행하던 불교의식이자 민속놀이입니다. 본래는 승려와 신도가 염불과 범패 속에서 탑을 돌며 공덕을 기리고 극락왕생을 비는 의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삼현육각과 민요풍 노래가 더해지고, 국태민안과 개인 소원을 비는 민속적 요소까지 품게 되었습니다. ([encykorea.aks.ac.kr](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8838" target="_self" rel="noopener">출처)
또한 탑돌이는 초파일 밤의 큰 축제 문화 속에서 연등행사, 관등놀이, 성불도놀이와 함께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단순히 탑만 도는 행위로 보기 어렵습니다. 정리하면 탑돌이는 “탑을 도는 의식”이면서도 “빛과 소리, 사람의 움직임이 합쳐진 초파일 밤의 민속놀이”였다고 이해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오늘날 월정사 탑돌이 같은 전승 사례까지 함께 보면, 탑돌이는 과거의 불교문화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살아 있는 전통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출처